🌊 볼음도의 보석, 갯벌과 밭을 일구는 ‘볼음도 장금이’ 이양금 여사
인천 강화군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닿는 고요한 섬, 볼음도. 이곳에는 섬 주민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여장부 이양금 여사가 살고 있습니다. 올해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계는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갑니다. 새벽이슬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 고추, 도라지, 옥수수를 돌보고, 물때가 되면 어김없이 갯벌로 향해 생합과 동죽을 캐는 그녀의 모습은 볼음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양금 여사가 ‘장금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부지런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가깝습니다. 가마솥에서 정성껏 고아낸 고추장과 조청, 직접 밀어 만든 칼국수와 갓 쪄낸 찐빵은 이웃들에게 전해지는 따뜻한 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솜씨와 억척스러운 생명력 뒤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이 숨겨져 있습니다.
🌿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던 어린 시절과 식모살이의 기억
이양금 여사의 고단한 삶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은 순식간에 가난의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어머니는 산더미 같은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어린 양금 씨는 학교 대신 남의 집 아이를 돌보는 일을 택해야 했고, 때로는 차가운 눈총을 받으며 식모살이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그녀에게 ‘배부르게 먹는 것’은 평생의 소원이자 한이었습니다. 남의 집 부엌에서 일하며 정작 본인의 배는 채우지 못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 그녀가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음식을 나누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내가 배고파 봤으니 남 배고픈 건 못 본다”는 이양금 여사의 말에는 칠십 평생 응어리진 삶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 볼음도 시집살이와 무릎 연골이 닳도록 이어진 헌신
가난을 피해 도망치듯 들어온 볼음도였지만, 결혼 생활 역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시누이들까지 건사해야 했던 그녀에게 휴식이라는 단어는 사치였습니다. 하루 세 번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밥을 짓는 것은 기본이었고, 밭일과 바다일을 병행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갯벌은 그녀에게 생명의 터전이었지만, 동시에 육체를 갉아먹는 고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쪼그려 앉아 조개를 캐느라 무릎 연골은 일찍이 닳아 없어졌고, 뼈마디가 뒤틀리는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번듯하게 키워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양금 여사는 볼음도의 거친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오늘을 일구었습니다.
☕ 가부장적인 남편 최재동 씨의 놀라운 변화
남편 최재동 씨는 과거 전형적인 ‘물 떠와라’ 식의 가부장적인 남편이었습니다. 아내가 밖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집안일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 양금 씨가 던진 “당신도 손발이 있는데 왜 직접 안 하냐”는 뼈아픈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여든한 살이 된 지금, 최재동 씨는 볼음도 최고의 사랑꾼이자 아내의 충실한 ‘오른팔’입니다. 아내가 바다에 나가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뒤를 졸졸 따라가고, 집에서는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 합니다. 식사를 마친 아내에게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그의 모습은 젊은 날의 무뚝뚝함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정합니다. 아내의 고생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된 남편의 뒤늦은 참회와 사랑은 부부의 황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 돌아온 막내아들 창호 씨와 대를 잇는 땀방울
도시에서 다양한 사업과 해외 생활을 경험하며 부침을 겪었던 막내아들 최창호 씨는 2019년 태풍 ‘링링’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부모님 곁에 정착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전광석화 같은 일손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그는 성실함으로 승부했습니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는 부지런함을 무기로 이제는 포도 농사를 책임지는 든든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오랜 노하우를 배우며 흙의 정직함을 깨달아가는 아들의 모습은 이양금 여사에게 그 어떤 재물보다 귀한 위안이 됩니다. 볍씨 파종 같은 중요한 농사일까지 아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게 된 요즘, 여사의 얼굴에는 비로소 평온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 눈물로 젖은 어버이날, 특별한 웨딩 프로젝트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양금 여사에게는 가슴 깊은 곳의 상처가 하나 있었습니다. 가난과 고생 탓에 제대로 된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빛바랜 결혼사진만 보면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들 창호 씨와 딸들은 어버이날을 맞아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다시 입어보는 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거친 세파를 견뎌온 주름진 손을 맞잡고 카메라 앞에 선 노부부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되찾아주고 싶었다”는 아들의 진심 어린 고백에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평생 남을 위해 밥을 짓고 길을 닦아온 이양금 여사에게, 그날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빛났던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 갯벌이 준 선물, 인생의 깊이를 아는 삶
이양금 여사는 말합니다. “어릴 때 겪은 고생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누군가는 그녀의 삶을 고달프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여사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밭에서 작물을 거두는 매 순간이 감사할 뿐입니다. 스스로 땀 흘려 얻은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고,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수 있는 지금이 그녀에게는 가장 화려한 성공입니다.
볼음도의 바람은 차갑고 갯벌의 진흙은 무겁지만, 이양금 여사의 마음만은 늘 따뜻한 아랫목 같습니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볼음도 장금이’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녀. 한 여인의 헌신이 어떻게 한 가정을 일으키고 마을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이양금 여사의 일상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묵직한 울림을 전해줍니다.